대한민국도 의외로 엄청난 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이 상당히 영세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으며[1],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가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다 보니 영화 제작사나 드라마 제작사 등에 비해 비중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거의 대부분의 업체는 자주제작보다는 일본, 미국 등 해외 메이저 스튜디오 작품이나[2] 대기업 단편 광고 등의 하청이 주가 되는 상황.
일본의 경우는 몇몇 대규모와 수많은 중소규모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존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A-1 Pictures나 J.C.STAFF 등의 제작사들을 대규모 제작사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들은 다작을 할 뿐 대규모의 제작사는 아니다. 일본에서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제작사는 선라이즈, 토에이 애니메이션 둘 뿐이며, 이들은 모두 대기업(반다이 남코, 도에이 영화사) 소유이다.[3] 그래서 대부분 제작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한다. 일부 유명 애니메이터와 그들을 돕는 어시스턴트로만 구성되어 소속 애니메이터의 매니지먼트나 하청만 담당하는 소규모 형태의 작화 하청사도 많으며 이런 회사는 주로 회사 이름에 '스튜디오'나 '프로덕션'이 붙는다.[4]
미국의 경우는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끝나지 않고, 배급까지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즈니가 대표적인 경우. 회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일본은 제작만 담당하고 그에 따른 수당만 챙기는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형이라면, 미국은 자신들이 직접 모든 사업을 전개하여 망하면 모든 손해를 짊어지고, 성공하면 모든 수익을 독점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형이다.
한국의 경우 입사 지원을 내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야근 잘 할 자신 있느냐"이다. 그렇다. IT 업계랑 상황은 비슷하다. 이쪽도 프로그래머랑 비슷하게 정시퇴근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직종. 일이 있으면 휴식도 없이 빡세게 일하고 대신 일 없을때는 그냥 쉰다. 출근해봐야 할 게 없어서 노는 게 일상. 대신 누가 일을 가져오면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그리고 미국을 제외하면 리스크가 적은 대신 봉급도 짜다. 애니메이션 쪽으로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잘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실은 애니메이션도 영화처럼 제작사보다는 감독[5]에 의해 스태프의 편성이나 작품의 질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데 세계적으로는 제작사 위주로 애니 평론을 하는 경우가 많다.[6] 어느 제작사가 만들어서 좋다 나쁘다 하는 식. 극단적으로는 감독 이름은 아예 언급도 안 하고 제작사만 거론하며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심지어 라프텔 같은 정식 스트리밍사조차 제작사만 표기하고 감독은 표기조차 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퍼니메이션 같은 서양 애니메이션 스트리밍사도 제대로 표시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7] 이건 애니메이션의 제작 시스템이 잘 안 알려져 있기도 하고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겸하는 팬덤이 많아 제작사의 영향을 받는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제작 방식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은 상당수의 핵심 작업이 사내에서 돌아가기에 제작사의 특징이 강하게 묻어나오지만[8]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각 분야 별로 특화된 제작사[9]가 따로 있고 프리랜서 인력이 워낙 많아서 감독과 프로듀서가 이걸 얼마나 잘 섭외하고 조율하는 가로 작품의 질이 좌우된다. 스태프롤 중 "애니메이션 제작: (기업명)"라고 뜨는 자막은 실제로는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을 총지휘하는 기업(원청기업)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회사 하나가 혼자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고 여러 제작사가 섞여서 만드는 게 보통인데 간판 제작사 하나만 가지고 애니를 평론하고 빗나가는 웃긴 상황이 자꾸 벌어지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고를 때는 제작사보단 감독 위주로 고르는 것이 좋다.[10] 또한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 등에서 제작사가 어쩌구하면서 애니를 지속적으로 평론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문가와 거리가 먼 사이비라 생각하는 것이 좋다.[11] 히카와 류스케, 오카다 토시오, 오구로 유이치로, 후지츠 료타, 송락현 등 좀 업계를 아는 평론가들은 당연하게도 감독을 중심으로 평론한다.
하지만 실사영상 분야보다는 제작사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들어가는 건 사실이다. 실사영상의 경우는 배우와 촬영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감독, 각본가(주로 드라마), 배우, 촬영 감독 위주로 영상이 결정되지만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영상 제작 단계에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팅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비록 애니 업계인들이 프리랜서 위주로 돌아간다고는 하나 많든 적든 회사 전속 연출가/애니메이터들도 역시 존재하고 따라서 제작사에 전속 인력이 있다면 당연히 이들을 우선적으로 기용하기 때문에 제작사만의 특징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교토 애니메이션, 본즈, ufotable, 트리거처럼 여러 분야를 다 사내에서 돌리고 하청을 거의 주지 않으며 감독이나 스태프가 고정 멤버로 이루어진 회사인 경우에는 회사 고유의 작품색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 외에도 애니메이션 연출가가 세운 제작 스튜디오에서는 설립자 연출가의 연출색이 다른 감독작에서도 묻어나오는 경우가 많다.[12] 이런 식으로 맞는 면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작사 위주로 판단하는 오류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특히 정보가 거의 없고 인지도가 낮은 제작사의 경우 감독보다도 더 유심히 살펴보는 게 좋다. 감독이 제일 중요하고 영상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는 하나 애니메이션은 감독 혼자서 만드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난립하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 종종 보이는 현상인데 감독의 평판은 좋지만 제작사가 너무 영세한 관계로 섭외한 인력들의 실력이 떨어져 감독의 연출을 따라가지 못해 영상미가 망하는 경우들도 종종 나온다. 이런 제작사들은 일감을 어떻게든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날림 기획안도 덥석 받아들여 제작에 착수할 수도 있어서 더더욱 주의가 필요하다.[13]
3D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셀 애니메이션보다 제작사의 영향력이 매우 커서 제작의 핵심을 차지한다. CG 모델링 구현 장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력과 달리 장비는 이동하지 않으므로 계속 그 회사 자산이다. 그리고 좋은 장비를 구할 수 있는 자금 조달력도 있어야 한다.[14] 그래서 3D 애니메이션은 한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면 같은 제작사가 후속작을 제작할 경우 제작비 투자를 더 해주기 때문에 대개 퀄리티도 더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15]
결론은 애니메이션의 퀄리티를 따질 때 1순위는 바로 감독이다. 감독이 가진 고유 미적 감각이 영상에 그대로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독을 전제로 한 다음에 제작사를 보아야 한다. 제작사가 유명하고 건실한 인력들을 많이 포섭하고 있다면 감독이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실력 있는 인물들이 거의 없는 회사라면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감독이라 하더라도 원하는 연출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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